겨우살이의 기막힌 번식작전

지난겨울 설악산에 갔다. 버스가 거친 눈바람을 헤치며 한계령 고갯길 따라 인제 쪽으로 내처 굽이치는 가파른 내리막을 내닫는다. 중간쯤 올 때면 절로 왼쪽 차창으로 고개 돌려 앙상하게 헐벗은 참나무 숲으로 눈길이 간다. 군데군데 우람하게 걸려 있는 까치 둥지만 한 ‘나무 위의 나무’에

여기서 말하려는 ‘겨우살이’는 겨울에도 푸르게 산다고 붙은 이름이라는데, 내 생각으로는 ‘겨우겨우, 가까스로 살아간다’는 뜻으로 보인다. 겨우살이는 겨우살잇과(科)의 상록기생관목(常綠寄生灌木)으로 다른 나무에 빌붙어 근근이 살아간다. 어렵사리 숙주(宿主) 나무에 기생하면서도 살이 통통한 잎사귀에 엽록체를 듬뿍 담고 있어서 적으나마 스스로 광합성을 한다. 따라서 겨우살이를 반기생식물(半寄生植物)이라 부른다.

그들은 우듬지에다 보통 식물 뿌리와 사뭇 다른 빨대 모양의 질긴 기생뿌리를 깊게 박아 기생 나무의 관다발(물관과 체관)에서 수액(물과 양분)을 들이빨고, 파고든 뿌리가 관다발을 틀어막아 끝내 시름시름 말라 죽게도 한다. 이렇듯 주인을 해코지하면서 얹혀사는 주제에 꽃피우고 열매 맺는 꽃식물(종자식물)이라고 하니 주제넘고 얌통머리 없다.

겨우살이(Viscum album)는 세계적으로 나무 200여 종에 900 남짓한 종이 더부살이한다. 우리나라에는 겨우살이·참나무겨우살이·동백나무겨우살이가 참나무·밤나무·뽕나무·오리나무·자작나무·배나무 무리에 기생한다고 한다. 물론 한 나무에 어떤 겨우살이가 들러붙어 사느냐는 것은 본디부터 단짝이 정해져 있다. 즉 ‘그 나무에 그 겨우살이’만 깃든다. 이를 인연이라 해야 할까? 하긴 악연도 연이라 했으니….https://cdn.interworksmedia.co.kr/js/media/chosunbiz/pc/chosunbiz_interplay_house.html

줄기는 Y자로 갈라지고, 긴 타원형으로 두툼하고 다육질(多肉質)인 황록색(어린잎은 진녹색임) 잎을 만져보면 가죽처럼 꺼칠한 것이 윤기가 하나도 없다. 또 암수딴그루(자웅이주)라 노란 암수 꽃이 다른 나무에 지천으로 피고, 곤충이나 새가 꽃가루받이한다. 10~12월에 열매살(과육)이 담뿍 든 둥글고 반투명한 열매가 연노랗게 영글고, 안에는 오롯이 씨앗 한 개씩이 있다.

그런데 산새를 꼬드기는 달콤한 구슬 열매 속의 씨앗에는 비신(viscin)이란 물질이 들었다. 새가 살집이 통통한 열매를 냉큼 따 먹으면 그것의 끈끈한 접착력 탓에 새부리에 씨알이 쩍쩍 들러붙으니 나뭇가지에 쓱쓱 문지르게 된다. 또 끈적거리는 똥도 줄기에 문질러 닦는다. 하여 비신이 마르면서 씨앗을 나뭇가지에 찰싹 엉겨 붙인다. 정녕 겨우살이의 기묘한 번식 작전에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서양인들은 통상 겨우살이를 생기·사랑·생식력을 상징하고 귀신을 내쫓는 신성한 나무로 여겨 크리스마스 장식에 쓰고 또 부엌이나 현관에 주렁주렁 걸어놓고 그 아래에서 입 맞추며 청혼도 한다. 게다가 열매 점액을 ‘끈끈이’로 써서 벌레·새·쥐를 잡는다.

또한 한방에서는 특별히 뽕나무겨우살이(상기생·桑寄生)를 요통·동맥경화·동상·중풍 치료용 약재로 썼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에도 우리는 물론이고 서양에서도 겨우살이 요법(mistletoe therapy)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하니, 항암 성분인 비스코톡신(viscotoxin)이 많이 들어있어 암을 다스린다고 한다. 하여 바로 지금도 산의 겨우살이가 된통 박살 나고 있다. 한계령 자락의 그것들도 모진 수난을 당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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