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퇴직은 처음이지?” 환청 같은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군대 두 번 가는 악몽을 더 이상 꾸지 않는 대신 느닷없이 퇴사 명령을 받는 꿈이다. 오래전에 퇴직했음에도 무의식을 지배할 정도로 개인에게 일과 직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사랑과 일, 그 두 가지가 의미 있는 삶의 조건이라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지적을 되새기게 된다.
깨어보니 새벽 3시, 괴테가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알프스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반도로 훌쩍 떠났던 운명의 시간이며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피츠제럴드가 ‘혼(魂)의 어둠’이라 불렀던 시간이기도 하다. 더 이상 잠은 오지 않고 하루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이른, 애매한 시간을 가리켜 영어권에서는 ‘스몰 아워스(small hours)’라 부른다. 정신 차리고 보니 주민등록상으로 한 살 나이를 또 먹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러갔나. 내 인생 시계는 지금 몇 시를 가리키고 있는가?”
어쩌면 인생은 투덜거림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에는 용돈이 충분했으면, 직장인 시절에는 휴일이 더 있었으면, 출퇴근 만원 지하철에 시달릴 때는 재택근무 가능한 직장이라면 하고 투덜거린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퇴직이 내 문 앞에 서 있다. 자유라는 이름의 긴 휴식이 찾아온 것이다. 학수고대하던 시간이 찾아와 마음껏 즐길 줄 알았는데, 마음이 편치 않다. 이번에는 할 일이 없어서 무료하다고 투덜거린다. 일 없는 새벽은 자유인 줄 알았는데 점점 그 새벽 시간이 두렵다.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심정이 이해되는 때다.
삶의 권태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걸작으로 카사노바의 회고록 ‘내 삶의 이야기’가 있다. 마키아벨리처럼 그 역시 이탈리아 출신이며 사후의 명성도 그리 좋지는 않다. 플레이보이, 호색한, 도박꾼, 사기꾼 등 부정적인 것들뿐이다. 그러나 그는 의외로 다채로운 인생을 살았다. 185㎝의 큰 키와 우월한 외모, 유창한 화술, 가톨릭 성직자로 인생을 시작해 군인과 바이올린 연주자, 사업가, 스파이 등 다양한 페르소나의 주인공이었다. 프랑스와 프로이센 궁정, 콘스탄티노플과 모스크바까지 유럽 대륙을 누비고 다닌 위대한 여행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인생 말년은 화려하지 않았다. 오랜 망명 생활과 낭비벽으로 빈털터리가 된 처지에 발트슈타인 백작의 후원으로 보헤미아 지방의 둑스(체코어로는 두흐초프) 성에서 개인 도서관을 책임지는 사서로 일자리를 얻는다. 백작의 하인들에게까지 놀림받던 처지였다. 72세의 카사노바는 그 치욕을 이기기 위해 매일 글을 썼다. 하루 13시간씩 썼다고 하는데 ‘그 13시간이 13분처럼 지나간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몰입했다.
그 결과물이 카사노바 회고록이다. 역사상 가장 독특한 회고록으로 전체 3700페이지 가운데 3분의 1이 남녀상열지사를 다루고 있고, 기록된 섹스 상대만 120명이나 된다. 충분히 예상되는 후세의 비난에 움츠러들 카사노바는 아니다. “이 회고록은 내가 저세상에 가고 난 다음에야 공개될 것이므로 나를 비난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웃으며 도망치는 개구쟁이 같다. 인생 만년은 행복하지 않았어도 유머 감각만큼은 잃지 않았다. 사람들은 대개 죽어가면서도 인생을 미화하기 마련인데, 그는 오히려 은밀한 사생활까지 솔직하게 공개했다. 카사노바는 도대체 왜 회고록을 써서 불명예를 자초했을까? “보헤미아에서 나를 서서히 죽이고 있는 끔찍한 권태를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 이 회고록을 쓰고 있다.”
100세 시대에 퇴직은 인생 후반전의 시작이다. 손흥민의 축구팀이 전반전 끝나고 하프타임에 전략 전술을 가다듬듯이 개인도 그럴 필요가 있다. 혁신은 아웃사이더가 일으키는 법이다. 인생 혁신도 비슷하여 조직 생활 속에서는 삶의 혁신에 한계가 있다. 마음속에 잠자고 있는 질주 본능을 깨워볼 때다. 머지않아 봄이 찾아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