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기후 난민’ 디아스포라 시대, 집 모양이 달라졌다
초호화 저택이 즐비한 미국 캘리포니아 말리부 해변. 억만장자들이 혁신적인 건축 디자인으로 경쟁하는 주거 단지에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은 유선형 건물이 2021년 들어섰다. 비누 거품 또는 계란 껍데기처럼 보이는 이 둥근 집은 영화 ‘아이언맨’ 주인공인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7년에 걸쳐 지은 ‘돔(dome·반구형) 주택’이다.
다우니는 10년 전쯤 돔 주택에 매료됐다. 구조적으로 자연재해에 강하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데다, 다양한 디자인 실험이 가능하다는 매력에 끌렸다. 다우니 의뢰를 받은 돔 전문 건축가 니콜로 비니는 “1960~1970년대 주택의 복고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다우니의 집을 지었다”고 했다. 다우니의 집은 뉴욕타임스(NYT)가 뽑은 ‘2022년 최고의 주택’으로 선정됐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창의적인 돔 주택이 등장하고 있다. 이상 기후가 ‘뉴 노멀’로 떠오르고, 폭우·폭염·태풍 같은 자연재해가 잇따르면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건축 양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허리케인 피해가 잇따르는 미국과 지진 위험에 시달리는 일본을 중심으로 돔 주택을 짓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기상이변에 돔 주택 열풍
미국 테슬라에서 IT 엔지니어로 일했던 존 듀샹은 2020년 8월 캘리포니아에 비상사태를 불러온 산불로 실리콘밸리를 떠나 일주일간 대피 생활을 했다. ‘불타는 세상’을 보며 실존적 위협을 느꼈다는 그는 최근 시에라네바다산맥 근처에 ‘안전 가옥’을 짓기 시작했다. 열을 반사하고 불에 잘 타지 않는 알루미늄 소재로 덮은 8.8m 높이 돔 주택이다.
NYT는 “극단적인 기후변화가 일으키는 사회·경제·정신적 피해를 이제 사람들이 체감하게 되면서 돔 주택이 새로운 관심을 받고 있다”고 했다. 미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기상재해로 집을 떠나야 했던 사람은 330만명에 달했다. 이 중 한 달 이상 집을 비운 사람이 120만명이었고, 50만명은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기후 난민’의 디아스포라(diaspora·이주) 시대가 열린 것이다.
돔 주택이 이상기후에 따른 주거 불안을 잠재울 대안으로 부상하자 건축업계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 워싱턴주의 돔 전문 건축업체 ‘지오십’은 섭씨 1260도까지 견딜 수 있는 바이오 세라믹 소재로 돔 주택을 짓고 있다. 무독성·재활용 자재를 사용하고, 태양열의 80%를 반사할 수 있는 외장재를 사용해 폭염에도 실내를 시원하게 유지한다. 이 업체는 지난해 한 채당 5만~20만달러짜리 돔 주택 500여 채(2024년 입주)를 미리 판매했다. 한 채당 35만~60만달러짜리 돔 주택을 짓는 미네소타주의 ‘내추럴 스페이스 돔스’도 올해는 작년의 2배 수준인 40채를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사는 밀려드는 주문에 최근 직원을 두 배로 증원했다.
텍사스의 돔 업체 ‘모놀리식 돔 연구소’의 게리 클라크 이사는 “돔 주택은 지난 1960년대 반짝 유행했다가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모양이 특이한 탓에 주류가 될 수 없었다”며 “시간이 흘러 자연재해로 집이 파괴된 사람들 사이에서 돔 주택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가 많은 앨라배마주 등 미국 남부에서 수요가 커지고 있다.
◇자연재해에 강하고 에너지 효율도 높아
돔 주택이 자연재해를 이겨내는 힘이 강한 것은 건물에 가해지는 무게·압력·힘이 돔 지붕 전체에 고르게 분산돼 지진과 같은 지반 변동이 생길 때에도 내구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면체 건물보다 외부 표면적이 30~50% 작아 태풍의 영향도 덜 받는다. 돔 구조의 안전성은 ‘로마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판테온 신전이 증명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돔 건물인 판테온은 1900년간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돔 주택에 널리 적용되는 건축 공법은 미국 건축가 버크민스터 풀러(1895~1983)가 삼각형을 짝지어 만든 ‘지오데식 돔(Geodesic dome)’ 기법이다. 이 기법은 삼각형의 모서리와 면을 연결시켜 다면체로 만드는 방식으로 크기가 커질수록 강도도 함께 커진다는 장점이 있다. 장윤규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는 “지오데식 돔은 최소한의 소재로 큰 하중을 지탱하며, 건물 내부를 이상적인 기후 상태로 만들어 준다”며 “이런 구조가 지난해 문을 연 구글의 친환경 사옥 ‘베이뷰 캠퍼스’의 돔 지붕 설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돔 주택은 실내 공간이 넓다는 것도 매력 포인트다. 지지대와 기둥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육면체형 건물보다 내부 공기 순환이 잘되는 덕분에 에너지 효율도 높다. 돔 건축업체들은 “돔 주택을 짓는 비용은 일반 주택과 비슷하거나 약간 더 비싸지만, 냉난방비가 절반 이상 덜 들어간다”고 강조한다.
◇복고풍 미래주의 디자인으로 각광
미학적 측면에서도 돔 주택은 재평가받고 있다. 1960년대 ‘복고풍 미래주의(retro-futurism)’ 디자인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1922~2020)의 별장이었던 프랑스 돔 리조트 ‘버블 궁전’은 최근 인기 래퍼 트래비스 스콧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했다. 우주복 입은 모습을 자기소개 사진으로 쓸 정도로 우주 마니아였던 가르뎅은 버블 궁전에서 문화·예술 행사를 수차례 열었다.
일본에선 돔 글램핑(호텔 수준의 호화로운 캠핑)이 전역에서 유행하고 있다. 돔 건축물은 지난 2016년 강진(强震)으로 구마모토현이 쑥대밭이 됐을 때, 돔 모양으로 지어진 이 지역 리조트 ‘아소팜랜드’가 끄떡없었던 일을 계기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안전은 물론, SF소설이나 동화에 나올법한 미래적인 디자인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시가현, 교토부, 미야자키현 등에 잇따라 돔 글램핑장이 등장했다.
일각에서는 통상 박물관·테마파크·오피스 빌딩에 적용된 돔 건물이 주거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다. 둥근 집을 사용하다 보면 버려야 하는 자투리 공간이 많아져 공간 활용에 불리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가구와 건축자재가 사각형 주택에 맞춰 제작된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유지·보수가 까다로운 데다, 특이한 모양 때문에 나중에 팔려고 하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펌 https://www.chosun.com/economy/weeklybiz/2023/08/10/LQO6YM3PUVFOFH4ANZXS3VMGI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