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

우리나라 속어로 회자수(劊子手)를 ‘망나니(亡亂)’라고 하니, 지극히 싫어하고 천시하는 말이다. 
황현(黃鉉), 『오하기문(梧下記聞)』

큰칼을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 술 한 잔 들이켜고 입으로 뿜어 칼날을 적신다. 사극을 통해 익숙해진 ‘망나니’의 이미지다. 한자로는 회자수라고 한다. 포수(砲手), 궁수(弓手)라는 용어와 마찬가지로 회자수는 원래 ‘회자’라는 무기를 사용하는 군인을 말한다. 회자는 『삼국지연의』의 관우가 휘두르는 청룡언월도와 비슷하다. 협도(挾刀)라고도 한다. 회자수는 붉은 옷차림에 붉은 두건을 쓰고 이 무기를 들고서 대장을 호위한다. 실전용이 아니라 위엄을 과시하고 공포를 심어주는 의장용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회자를 사형 도구로 사용하는 바람에 회자수가 망나니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회자는 자루가 길어서 원심력을 이용해 세게 내리칠 수 있다. 사람의 목을 단번에 베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서양의 사형집행자가 긴 자루 달린 도끼를 사용한 것도 같은 이유다. 사극의 망나니는 칼날이 넓고 자루가 짧은 칼을 사용하는데, 이런 걸로는 사람의 목을 베기 어렵다. 채썰기에나 알맞은 칼이다. 사극의 망나니는 어디까지나 허구다. 사형 집행 장면을 묘사한 옛 그림에서도 회자를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무리 죽을죄를 지은 죄인이라지만 산 사람의 생명을 끊는 것은 차마 하기 어려운 일이다. 남들이 차마 하기 어려운 일을 떠맡은 탓인지 망나니는 되레 잔인해졌다. 사형수가 뇌물을 주지 않으면 고통스럽게 죽였다는 기록도 있다. 윤준(尹浚)이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사형을 앞두고 있는데 망나니가 돈을 요구했다. 윤준은 거부했다.

망나니또는회자수_김윤보 형정도첩(계간미술39호)

돈을 준다고 내가 안 죽겠는가.

화가 난 망나니는 최대한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그를 죽였다. 야사에 나오는 이야기라 의심스럽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지관(地官) 이시복(李時復)은 순조 임금의 능을 잘못 잡았다는 이유로 처형되었다. 나중에 시신을 확인해 보니 망나니에게 난도질을 당했다. 뇌물을 주지 않았나 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망나니는 물론 현장에 입회한 의금부 도사와 전옥서 관원도 처벌을 받았다. 『승정원일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망나니의 행패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명절이 다가오면 떼 지어 시장에 나타나 물건을 빼앗고 돈을 갈취했다. 쌀가게에 들어가서 큰 바가지로 쌀을 마구 퍼 갔다. 주인은 감히 막지 못하고 손님은 더럽다며 가 버렸다. 원성이 높아지자 보다 못한 원님이 나섰다. 관가의 돈으로 땅을 사서 그 소출을 망나니에게 주었더니 행패가 사라졌다. 철종조의 기록인 『임술록(壬戌錄)』에 나오는 이야기다. 나라에서 받는 돈만으로는 살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조선 시대에는 사형을 집행하는 기관이 여럿이었다. 죄인의 신분과 죄목에 따라 의금부, 형조, 각 지방의 감영과 군영 등이 나누어 집행했다. 사형을 집행하는 기관이 여럿이므로 집행자도 여럿이다. 원칙적으로는 군인의 임무였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다.

특이한 것은 전옥서다. 전옥서의 사형 집행자를 행형쇄장(行刑鎖匠)이라고 한다. 행형쇄장은 사형수 내지 중죄인이 맡는 것이 관례였다. 사형을 면해주는 대신 형 집행의 책임을 맡긴 것이다. 평소에는 다른 죄인과 똑같이 감옥에 갇힌 죄수 신세다.

어째서 죄수에게 형 집행을 맡겼을까. 아무도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으므로 어차피 죽을 목숨인 죄수에게 떠넘긴 것이다. 강제로 시킨 게 아니라 자원을 받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사람을 죽인다는 죄책감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행형쇄장이 형 집행을 거부한 사례도 있다. 첫 번째는 간신히 설득해서 형을 집행했지만, 두 번째는 아무리 으르고 달래도 요지부동이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신세인데도 끝까지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할 수 없이 도살업자를 불러 억지로 형을 집행했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행형쇄장이 죽었으니 후임자를 구해야 한다는 기록이 종종 보인다. 사형집행자라는 무거운 책임은 죽어야만 벗어날 수 있었다. 

망나니라는 우리말은 도깨비라는 뜻의 망량(魍魎)에서 나왔다고도 하고, 난동을 뜻하는 망란(亡亂)에서 나왔다고도 한다. 또 다른 기록에 따르면 망나니는 원래 ‘막란(莫亂)’이라는 사람 이름이었는데, 사형집행자의 대명사로 굳어진 것이라 한다. ‘막란’은 우리말로 ‘마지막으로 낳은’, 즉 막내라는 뜻이다. 무시무시한 사형집행자 ‘망나니’는 원래 어느 집 막내아들이었던 것이다. 사형수야 죄를 지었으니 그렇다치고, 한 집안의 막내아들이었던 그는 무슨 죄로 사람을 죽여야 하는 운명이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