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이 사라진다면

지난 1월 아르헨티나 연구진이 2015년 기준 전 세계에서 목격되는 야생 꿀벌 종류가 1990년보다 25%나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어요. 불과 25년 만에 야생 꿀벌이 엄청나게 사라진 거죠.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은 최근 들어 꾸준히 제기되는 문제입니다. 2017년 유엔(UN)은 전 세계 벌의 3분의 1이 멸종 위기라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래픽=유재일
/그래픽=유재일

이렇게 꿀벌이 사라지는 이유는 기후 온난화, 살충제 살포, 전염병, 야생화 서식지 감소 등 때문이에요. 우리나라 토종벌도 가뜩이나 꿀 따는 능력이 월등한 서양 꿀벌이 도입되면서 수가 서서히 줄어왔는데, 최근엔 ‘꿀벌의 흑사병’으로 불리는 ‘낭충봉아부패병(囊蟲蜂兒腐敗病)’ 등이 창궐해 멸종 직전에 몰렸다고 합니다.

전 세계 곳곳에선 벌을 보호하는 다양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어요. 네덜란드는 도시 곳곳에 벌이 둥지를 틀 수 있도록 대나무로 만든 ‘벌 호텔’을 설치하고, 버스 정류장 위에 식물을 심어 ‘벌 정류장’도 만들었죠. 고속도로 등에 야생화를 심는 ‘꿀 고속도로’ 사업도 펼친다고 해요. 이런 노력으로 벌 개체 수가 조금 회복됐다고 합니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벌 감소에 우려를 표하며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019년 런던 왕립지리학회는 벌을 ‘살아 있는 가장 중요한 생명체’라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코로나 사태로 ‘꿀벌발 식량난 우려’

벌의 종류는 8000~2만종에 이르고, 꿀벌과에 속하는 벌만 해도 5700여종에 달해요. 꿀벌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합니다. 바로 꿀벌들이 꿀과 꽃가루를 먹으려 이 꽃 저 꽃 날아다니면서 꽃의 수분(受粉)을 돕기 때문이에요. 수분은 꽃가루가 암술에 붙는 것이에요. 수분이 되어야 수정이 이뤄지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006년 독일 연구진 연구에 따르면, 사과·배 등 인간이 기르는 주요 농작물 종류의 70%가 꿀벌 같은 동물이 수분 활동을 도와줘야 한다고 합니다. 이들 농작물의 생산량은 전체 농작물 생산량의 3분의 1을 차지한다고 해요. 이때 농작물 수분 활동을 돕는 동물은 나비·새 등 다양하지만, 대다수는 꿀벌의 도움으로 수분이 이뤄진다고 합니다. 따라서 환경 단체 그린피스는 꿀벌이 식량 재배에 기여하는 경제적 가치가 373조원에 이른다고 추산하기도 했어요.

최근에는 코로나 사태로 꿀벌 수급이 잘 안 되어 전 세계 식량난이 우려된다는 뉴스까지 들려왔어요. 꿀벌은 각 지역에 사는 토종도 있지만 외국에서 수입도 하고 양봉업자가 기르기도 해요. 그런데 코로나로 국경이 봉쇄되자 꿀벌을 수입하지도 못하고 해외 양봉 인력을 데려오지도 못해서 농작물 수분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고 합니다.

◇로열젤리 계속 먹으면 여왕벌 돼요

벌은 자손의 성별을 조절할 수 있는 대표적 생물종이에요. 여왕벌은 수벌과 짝짓기 중에 받은 정자를 몸 속 저정낭에 저장해두고 조금씩 꺼내어 사용해요. 이때 자신의 난자와 수벌의 정자를 결합한 수정란에서는 암컷이 나옵니다. 그리고 정자를 사용하지 않고 난자만으로 태어나는 것은 수벌이죠. 이를 처녀생식이라고 해요. 수벌뿐 아니라 수개미도 처녀 생식으로 태어납니다.

암컷 꿀벌 애벌레 대다수는 생식력이 없는 일벌이 되지만, 일부는 생식력을 갖춘 여왕벌로 자라요. 흥미로운 점은 그들의 운명을 가르는 요인이 먹이 차이라는 것이에요. 갓 태어난 애벌레는 모두 첫 3일은 로열젤리를 먹고 자라요. 로열젤리는 번데기에서 깨어난 지 5~15일 된 일벌 머리에서 분비되는 물질이에요. 그런데 이 로열젤리는 3일 이후엔 특정 애벌레에게만 공급되는데 이 애벌레가 여왕벌이 됩니다. 연구에 따르면 로열젤리 속 로열락틴이란 성분이 일벌과 여왕벌을 가르는 핵심이었다고 해요. 하지만 지난해 연구에선 로열젤리 성분보다 양이 더 중요하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어요.https://e897b6f7ae199fab9f4dbe84ec9d007c.safeframe.googlesyndication.com/safeframe/1-0-38/html/container.html

◇꽉 짜인 벌의 일생

꿀벌의 일생은 ‘효율성’이란 슬로건 아래 꽉 짜여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일벌은 6일간 짧은 애벌레 생활을 마치고 12일 동안 번데기로 지내다 일벌이 되어 벌집 속 자기가 머물던 육각형 방에서 나옵니다. 이후 며칠 동안은 벌집 안에 머물며 청소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관리하고, 몸속에 독액을 축적하기도 합니다. 5~15일까지는 머리에서 로열젤리를 분비해 동생 애벌레들을 먹이죠. 그러다 로열젤리 분비선이 막히면 그제야 집 밖으로 나가 주변을 날아다니며 경계를 서요. 집 안팎을 순찰하며 부서진 곳이 있으면 밀랍을 분비해 수선하거나 새로운 방을 만들죠. 생후 18~21일 즈음 본격적인 바깥일을 시작합니다.

일벌이 한 번 일하러 나가면 평균 꽃 50~200송이에 날아들어 꿀 0.02~0.04g을 따서 돌아와요. 날씨가 좋고 꽃이 많이 피는 계절엔 하루에 8~16회까지 꿀을 따러 나간다고 해요. 노동 강도가 높은 한여름에 태어난 일벌은 겨우 두 달밖에 못 살지만, 겨울에 태어난 벌은 6개월까지 수명이 늘어납니다.

벌은 여름에는 날개를 부채처럼 이용해 벌집 안 온도를 낮추고, 겨울에는 가슴 근육을 떨어 열을 내서 벌집 안을 따뜻하게 유지합니다. 벌은 최고 50도까지 열을 낼 수 있어서 겨울에도 벌집 내부 온도가 32도 이하로 안 내려간다고 해요. 벌들은 서로 바짝 붙어 열 손실을 최소화하고, 심지어 바깥쪽에 있는 동료와 한 번씩 자리도 바꿔주는 의리 있는 행동도 합니다.

이런 효율적이고 최적화된 벌의 일생은 주변 자연과 교류하며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진화되어 왔어요. 그런데 최근 산업화와 기후변화 등으로 벌을 둘러싼 환경이 지나치게 급변해 벌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꿀벌이 사라지면 꿀벌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인류의 삶 역시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앞다리에 숨어 있는 특별한 기능]

꿀벌 몸은 다른 곤충처럼 머리·가슴·배 등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어요. 다리는 세 쌍, 날개는 두 쌍이에요. 머리에는 눈과 더듬이가 한 쌍씩 있는데, 커다란 겹눈 사이에 자그마한 홑눈 3개가 있는 게 특징이에요. 홑눈은 빛을 감지하고, 겹눈은 사물을 구별하는 역할을 합니다. 사람에게도 홑눈이 있다면 눈을 감고 있어도 해가 떴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다리 세 쌍은 역할이 달라요. 앞다리와 가운뎃다리는 꽃가루를 모아 뒷다리에 달린 꽃가루 수집 통에 모으는 역할을 해요. 앞다리에는 ‘더듬이 청소기’라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요. 반달 모양 홈에 잔털이 나 있는데 여기에 더듬이를 집어넣어 이물질을 털어냅니다. 벌은 시각이 발달되어 있긴 해도 더듬이에 여러 감각 수용체가 있기 때문에 수시로 털어줘서 깨끗하게 유지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