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간장에 햇간장 더하는 ‘겹장’의 미학

여름철 입맛이 없을 때, 찬물에 만 밥 한 숟가락에 짭조름한 장아찌 한 점 올려 먹으면 산해진미 부럽지 않다. 어떤 식재료로 만든 장아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땅에서 자란 콩과 바다에서 온 소금이 장독 속에서 햇볕 쬐며 만들어낸 간장의 힘이 팔 할이기 때문이다.

간장은 사계절, 다양한 식재료와 잘 어울린다. 게·새우·메추리알부터 마늘·고추·명이나물·머위·콩잎·산초·곰취까지 모두 달큼하게 품는다. 사실 해산물과 나물을 손질하고 절이는 수고까지도 필요 없다. 흰쌀밥에 재래 김을 싸서 간장에 찍어 먹기만 해도 별미가 되며, 아플 때 흰죽에 간장을 살짝 뿌려 먹기만 해도 입맛이 살아난다.

마당 한가운데 햇볕잘 드는 곳에 자리잡은 장독대. 우리 민족은 간장을 정성스레 만들어 먹었고, 몹시 귀하게 여겼다.
마당 한가운데 햇볕잘 드는 곳에 자리잡은 장독대. 우리 민족은 간장을 정성스레 만들어 먹었고, 몹시 귀하게 여겼다.

◇선조들도 귀하게 여긴 한식의 기본, 간장

우리 선조(先祖)들은 간장을 정성스레 만들어 먹었고, 몹시 귀하게 여겼다. ‘김장은 겨울 농사, 장은 1년 농사’라는 말처럼 장은 한 집안 먹을거리의 근간이었다.

어머니들은 장 담그기 사흘 전부터 바깥출입을 삼갔고 몸가짐도 바로 했다. 장 담그는 날에는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소금·메주·고추를 올려놓은 소반 앞에서 장이 잘 되길 빌었다. 장 담그는 삼칠일 동안은 부정 탈까 봐 상갓집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쟁과 기근으로 굶주린 백성들에게 곡류와 함께 간장이 중요한 구호 물품 중 하나로 꼽혔다고 하니 선조들의 간장 사랑을 알만하다.

간장은 한식의 기본이자 거의 모든 요리에서 간을 담당한다. 간장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맛은 짠맛이다. 하지만 맛있게 숙성된 간장에서는 의외로 감칠맛이 더해진 부드러운 단맛을 느낄 수 있다. 시간이 만들어낸 천연 단맛으로 설탕이 만들어내는 인공 단맛과는 구별된다. 따라서 간장의 짠맛도 소금의 단순한 짠맛과는 큰 차이가 있다. 콩과 발효에서 나오는 복합적인 맛들이 단조로운 짠맛과는 확연하게 다른 특별한 맛을 내기 때문이다.

간장은 쓰임새만큼이나 그 종류와 부르는 명칭도 다양하다. 국간장·진간장·양조간장·집간장·조선간장 등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도 특별한 개념을 가지는 간장이 있다. 바로 ‘씨간장’이다. 씨간장은 말 그대로 간장의 씨앗이 되는 간장이다. 바로 간장 맛의 기본이 되는 종자 개념이다.

◇햇간장 더하는 ‘겹장’으로 오랜 세월 지켜낸 씨간장

씨간장을 오랜 세월 지켜낸 가장 중요한 비밀은 바로 ‘겹장’이다. 씨간장을 그대로 두기만 해서는 오랫동안 유지하기 어렵다. 사용한 만큼 양이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수분도 날아가기 때문이다. 조상들은 씨간장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햇간장을 조금씩 첨가하는 ‘겹장’ 방식으로 균일한 맛을 지켜냈다.

이웃과도 장맛을 공유했다. 간장 맛이 조금 떨어진다 싶으면, 이웃집에 찾아가 간장을 구해다가 섞어 먹었다. 한 집안, 나아가 마을 전체의 장맛을 책임져 온 셈이다.

씨간장은 버릴 것이 없는 효자 식품이기도 하다. 씨간장독 아래 가라앉은 소금 결정체를 건져내 여러 번 씻고 말려 사용하면, 일반 소금보다 나트륨은 적고 감칠맛과 단맛·짠맛이 조화로운 천연 조미료가 된다.

씨간장은 건강에도 유익하다. 양질의 단백질 등이 풍부해 탄수화물 중심의 식사에 필수 아미노산과 지방을 보충해주기 때문이다. 씨간장에는 발효의 신비도 숨어있다. 간장 숙성 과정에서 각종 유기산·핵산·젖산 등 인체 유익균이 생성되고, 세월을 거치며 더욱 강한 유효 발효균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는 겹장을 할 때도 살아남아 달큼하고 고소한 일정한 맛을 선사하는 것이다.

◇오래 간직하고 싶은 간장, 씨간장

씨간장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하기 쉬운 것이 있다. 바로 ‘씨간장은 오래된 간장’이라는 것이다.

씨간장은 단순히 100년, 200년 묵은 오래된 간장이 아니다. 씨간장은 간장의 씨앗이 되는 풍미가 좋은 간장, 다음 해에도 먹고 싶은 ‘맛있는 간장’이다. 다시 말해, 씨간장은 단순히 오래된 간장이 아닌 ‘맛있는 간장,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은 간장’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출처
https://www.chosun.com/special/special_section/2021/06/28/MMJE26KEWBFL7NZV63ECDGTS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