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그믐날

섣달그믐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이므로 새벽녘에 닭이 울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새해를 맞이한다. 이러한 수세(守歲) 풍습은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의미로서 우리나라에 역법(曆法)이 들어온 이래 지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세는 지나간 시간을 반성하고 새해를 설계하는 통과의례로 마지막 날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날’, 참 정감이 느껴지는 말입니다. 이 말에서 느끼는 저의 감회는 살같이 빠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실속 없이 세월만 보냈다는 아쉬움에 마음이 허전해지는 것이지만, 마냥 싫지만은 않습니다. 이날은 한 해를 돌아보고 마무리하며 새 희망의 새해를 준비하는 날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섣달은 한 해를 다 보내고 새해 설날을 맞게 된다는 뜻의 ‘설윗달’ 또는 ‘서웃달’에서 나온 말입니다. 또 그믐날의 ‘그믐’은 보름달이 날마다 줄어들어 눈썹같이 가늘게 되다가 마침내 없어진다는, ‘사그라지다’와 같은 뜻의 순우리말 ‘그믈다’의 명사형입니다. 섣달 그믐날은 한자어로는 제일(除日)이라고도 했습니다. 제(除)는 옛것을 없애고 새것을 마련함을 뜻합니다.

민가에서는 이날 집 안팎을 깨끗이 청소했습니다. 가는 해를 먼지 털듯이 털어내고 묵은 것을 다 쓸어버려야 액(厄)이 모두 물러나 새해에 복이 들어온다는 생각에서 그랬습니다. 또한 집 안 곳곳에, 심지어 외양간과 변소까지 기름 등잔을 켜서 환하게 밝혀놓았습니다. 불을 켜두면 잡귀가 들어오지 못하고 집에 밝은 기운이 들어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날에는 새벽녘 닭이 울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수세(守歲)하면서 새해를 맞이하였습니다. 수세는 지나간 시간을 반성하고 새해를 설계하는 것으로 마지막 날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우리가 12월을 섣달이라 부르듯이 일본 사람들은 12월을 사주(師走·시와쓰)라고 부릅니다. 이상한 이름입니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스님이 불경 외우기를 서두르는 마지막 달 또는 한 해가 다 무르익었다는 표현에서 차음(借音)하였을 것이라고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글자 그대로 점잖은 스님이나 선생님도 바삐 뛰어다니는 때라는 정도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밀린 일을 정리하여 한 해를 잘 마무리해야 하니까요.

실제로 일본 사람들은 섣달 그믐날을 오미소카(大晦日·おおみそか)라고 하여 이날 대청소를 하였습니다. 설날은 새로운 한 해의 신(神)을 맞이하는 날이기에 미리 깨끗하게 청소하고 신을 맞이한다는 겁니다. 옛 풍습은 두 나라가 많이 닮았습니다.

펌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