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정사계 네 가지 술, 맛이 다 달라요

입력 2018.05.19 07:00[한국술 기행] “풍정사계 네 가지 술, 맛이 다 달라요”
⑧청주 풍정사계 이한상 대표
봄은 약주, 여름은 약주에 증류주 섞은 과하주, 가을은 탁주, 겨울은 소주
작년 11월, 트럼프 대통령 방한 때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돼 화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약주, 더운 여름은 과하주(여름을 보내는 술), 수확철인 가을은 탁주, 그리고 추운 겨울은 증류주.

춘하추동 계절별로 특색 있는 우리 술을 내놓는 풍정사계 술은 옛부터 물맛 좋기로 소문난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풍정(단풍나무 우물)마을에서 빚는다. 양조장 이름은 화양이다. 화양은 ‘조화양지’의 준말로 ‘조화롭게 섞어 (술을)빚다’는 뜻이다. 술맛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향기롭고 조화로운 술이 빚어진다는 철학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풍정사계 맛을 본 사람들은 그러나 양조장 이름 화양은 기억하지 못하고 풍정사계를 양조장 이름으로 기억하고들 있다.

풍정사계 춘하추동은 국내산 쌀과 녹두가 들어간 누룩, 향온곡으로 빚은 술이다. 풍정사계 춘은 약주, 풍정사계 하는 과하주, 풍정사계 추는 탁주, 풍정사계 동은 증류식 소주이다. 그리고 앞글자 풍정은 양조장이 있는 마을 이름이다. 전통술 가운데 브랜드 네이밍이 가장 잘 된 사례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풍정사계 이한상 대표가 풍정사계 겨울 술인 ‘풍정사계 동’을 만드는 증류기 앞에 서 있다. /박순욱 기자

풍정사계 이한상 대표는 청주 시내에서 사진관을 18년간 운영해왔다. 제법 돈도 만졌다. 그러나, 디지털카메라 등장으로 사진관이 사양사업으로 접어들 것을 예감하고 사진관 운영 틈틈히 전통술을 배우고 누룩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 술 제조 면허를 취득하고도 2년 동안 술을 만들지 못해 부득이 면허를 반납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집안 집성촌이며, 자신이 어릴 때부터 자란 마을 이름이 들어간 풍정사계 술을 처음 내놓은 게 2015년 1월이었다. 2006년 전통술에 발과 손을 담근 지 꼭 10년이 되는 해였다. 그리고 만 2년도 채 지나지 않았던 2017년 11월, 미국 트럼프 대통령 방한 때, 청와대 만찬주로 풍정사계 춘(약주)이 선정됐다.

-풍정사계가 계절별로 술을 만드는 이유는?

“우리나라 술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약주, 탁주, 소주 이렇게 셋이다. 그런데 술을 배우다 보니까 과하주라는게 또 별도로 있더라. 말 그대로 여름을 넘기는 술이다. 제조 방문을 보면, 봄에 약주를 빚고, 이 약주에 소주를 첨가해 알콜 도수를 높여 만드는 게 과하주다. 알콜도수가 20도 정도가 되면 더운 여름에도 상온에 보관과 유통이 가능하다. 발효를 촉진시키는 효모도 17~18도까지는 활동을 하는데, 알콜 도수가 20도 정도에는 더 이상 활동을 못해 사실상 발효도 중단된다. 하지만 당화는 계속 되니까 좀 달달한 술이 만들어진다. 이게 과하주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술이 세 가지가 아니라 네 가지(과하주 포함)가 있는 셈이다. 강화 약주가 곧 과하주다. 주정 강화 술은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유럽에도 주정 강화 와인이 있다. 발효 중인 와인에 증류주인 브랜디를 첨가한 포르투갈의 ‘포트 와인’과 발효 후에 브랜디를 넣은 스페인의 ‘셰리 와인’은 세계 2대 주정강화 와인으로 꼽힌다.

풍정사계의 사계절 술들. 왼쪽부터 봄술인 풍정사계 춘은 약주, 여름은 약주에 증류주를 일부 넣은 과하주, 가을은 탁주, 겨울은 약주를 증류한 소주다. 풍정사계 제공

사계절을 술과 연관지어 보니까, 약주는 봄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과하주는 이름 그대로 여름술이고, 탁주(막걸리)는 가을겆이와 맞더라. 수확철에는 막걸리가 어울린다. 겨울은 소주가 또 어울리고. 그래서 춘하추동 네 가지 술을 만들게 됐다.

계절별 술이 있다고 해서 봄에는 봄술인 약주 ‘풍정사계 춘’만 담고, 여름에는 과하주인 ‘풍정사계 하’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사계절 술을 사시사철 만들기 때문에 계절과 상관없이 언제든 네 가지 술을 다 마실 수 있다. 다만, 술의 특성을 계절과 연관시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술을 즐겨 드시던 방법 중에서 네가지 특색 있는 방법이 있다 해서, 이것을 재현시키려고 계절별 술 풍정사계를 만든 것이다.”

풍정사계 술은 이한상 대표가 직접 빚은 누룩으로 만든다. 술은 쌀, 물, 누룩의 조화로 만드는데 이중 누룩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이한상 대표의 지론이다. “우리 술은 우리 누룩으로 만들어야 세계인이 알아주는 명주를 만들 수 있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요즘에는 직접 누룩을 빚어 만드는 전통술도 드물지만, 녹두가 들어간 누룩(향온곡)으로 만드는 풍정사계는 그래서 더 드문 사례다.

-녹두를 일부 섞은 누룩, 향온곡을 쓰는 이유는?

“2006년 처음 술을 배울 때 누룩 만드는 법도 배웠다. 당시 내게 술을 가르치는 분이 ‘술은 누룩놀음(술 만드는데 누룩이 제일 중요하다, 술 맛은 누룩이 좌지우지한다는 뜻)’이라고 하셨다. 2006년 9월에 처음 누룩을 만들어봤다. 그래서 생각든 것이 ‘내 술이 있으려면 내 누룩이 있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럼 나는 어떤 누룩으로 술을 만들 것이냐? 오래 생각했다. 내게 술을 가르쳐준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장이 쓴 책 ‘버선발로 디딘 누룩’이란 책을 당시 읽었다. 그 책에서 ‘녹두가 들어간 누룩, 향온곡이 매력이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녹두의 효능에 숙취해소 작용이 있다. 알콜 해독 기능이 있다. 그래서 해장용으로 아침에 녹두죽을 먹고 막걸리를 마실 때 녹두전을 많이 먹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향온곡은 옛부터 내의원(조선시대 궁정병원)에서 만들었다. 우리가 만드는 향온곡은 녹두 10%, 나머지 90%는 밀이다.

풍정사계는 녹두가 10% 들어간 누룩, 향온곡으로 빚는다. 녹두는 예부터 숙취해소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박순욱 기자

노란 녹두가 들어간 누룩으로 술을 빚다 보니, 술 색깔이 다른 술들보다 황금색이 도는 것이 특징이다. 녹두 색깔이 노란 색인 것도 있지만, 우리가 직접 빚어서 쓰는 누룩과 만들어 놓은 걸 사서 쓰는 누룩으로 만든 술 색깔도 차이가 있다. 향과 맛에 있어서는 좀 더 깔끔한 맛이 난다.”

-2010년에 술 제조면허를 처음 내고서도 2년 동안 술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고 들었다.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번째는 술 양조 공간이 술을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오염이나 습도 조절 면에서 문제가 많았다. 물론 지금은 바닥에 방수페인트를 칠하는 등 모두 개선이 됐다. 당시에는 바닥에 베니아 장판을 깔아두었다. 베니아판은 물청소를 못하기 때문에 청결 유지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열악한 공간에서 2년간이나 술을 빚었는데, 다 실패했다.

내가 만들고자 했던 술은 법주(경주 교동법주) 스타일의 약주였다. 제조 면허도 그렇게 받으려 했었다. 술 스승인 박록담 소장도 동의했다. 그런데 두번째 사고가 터졌다. 당시 내가 속해 있던 술동호회 모임인 ‘술방 사람’ 회원끼리 술 만들기 시합이 벌어진 것이 내겐 큰 화근이었다. 이 동호회에서 연화주곡(쌀 누룩)이란 누룩을 만들었는데, 시한을 정해 이 누룩을 사용해 각자 술을 빚어 누가 제일 잘 만드냐는 시합이 붙은 것이다.

술을 빚기 전에는 우선 누룩을 콩알 크기로 빻아서 햇볕에 오래 말려야 한다. 적어도 3일, 많게는 일주일 정도 빻은 누룩을 뒤척이며 햇볕에 말린다. 이건 누룩을 자외선 소독, 살균을 시키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이 과정을 제대로 거칠 수가 없었다. 내가 만드는 술은 평균 100일이 걸리는데, 완성된 술을 제출해야 할 기간이 정해져 있어, 급하게 누룩을 말리다 보니 제대로 소독처리를 못했다. 결국 소독이 제대로 안된 누룩으로 술을 만들어 술 전체를 망쳐버렸다.

이렇게 술을 만들어보니까, 완성된 술 위에 뿌연 막(불순물)이 형성돼 있었다. 정상적으로 만들었으면 없어야 할 것이었다. 그 이후부터는 아무리 정성들여 술을 만들어도 계속 뿌연 막이 형성돼 제대로 된 술이 나오지 않았다. 오염이 됐기 때문이었다. 누룩을 제대로 살균처리를 못해 2년 동안이나 술을 만들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2010년 술 면허를 받고도 2년 동안 술다운 술을 만들지 못해 부득이 면허를 다시 자진반납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술을 다시 만들기로 한 이유는.

“2013년도에 다시 면허를 신청하기에 앞서 아내와 상의했다. ‘술을 다시 하는 게 맞나? 차라리 그만두고 다시 사진관을 할까?’ 하고. 그랬더니 아내가 ‘여지껏 한 게 있으니까 한번만 더 해보자’고 권했다. 그때 이미 10년 정도 투자를 한 후였기 때문에 포기하기는 아쉬움이 있었다. 또, 아내가 이제부터는 같이 하자며 힘을 보탰다. 그래서 2013년 봄에 양조장 기존 시설을 다 들어내고 방수처리를 새롭게 했고 10월쯤에 면허를 다시 받았다. 풍정사계 이름을 붙인 술이 나온 것은 그로부터 2년 좀 덜 지난 2015년 1월이다.”

-사진관을 하다가 전통술 제조로 업종전환한 계기는?

“1994년부터 2012년까지 18년간 사진관을 했다. 사진은 2000년 들어 디지털 시대가 들어서면서 사양사업이란 걸 느꼈다. 사업이란 게 뭔가 내가 변화를 줄 수 있어야 불경기도 버텨낼 수 있는데, 사진은 내가 변화를 줄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사진관을 하면서도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다.

내가 있는 이 곳이 우리 집안 집성촌이다. 어르신들이 종가집 역할을 하시면서 지내신 집이다.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가 이 마을에서 촌장 역할을 하셨다. 어려서부터 교육을 받은 것이 한학이었고, 그런 분위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보니, 커서도 우리 전통에 관련된 것들이 많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을 하면서 경주에 세미나를 갈 기회가 있었는데, 경주의 유명 전통주인 교동법주를 가보고 싶어서, 경주 가는 길에 그곳을 찾아 교동법주 한병을 사왔다. 그 술을 조금씩 마시면서 우리 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됐다. 우리 술이 정말 괜찮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검색에 술 관련 교육기관들이 여럿 있었다. 누룩 만드는 법을 비롯해 10주 과정 교육 코스가 있었다. 여기서 배우면 술에 대한 초보적인 것은 알겠다 싶어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그게 2006년이었다. 그렇게 시작했다.”

– 지금의 풍정사계를 만든 계기는 교동법주?

“이전에 할머니가 집에서 담근 술은 그리 향기가 있지 않았다. 그런데 교동법주는 그 향이 정말 좋았다. 쌀로 만든 술인데도 꽃향이 느껴졌고, 그것도 아주 부드러운 향과 맛이었다. 교동법주 한병을 한달 동안 조금씩 음미를 했는데, 다 마실 때까지 술이 쉬지 않았다. 대개 우리 술들은 오래 먹다 보면 끝에 가면 쉬어서 산미가 확 올라온다. 그런데 교동법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맛에 변화가 없었다. 맛의 변화가 있다면 교동법주를 처음 마셨을 때 첫맛은 아주 호화스럽고, 끝맛은 서너가지 맛으로 압축되는데, 그것도 아주 좋았다. 사탕 같은 달콤한 향도 있었다.”

-이곳 풍정리는 어떤 곳인가?

“풍정은 청주시 내수읍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동네에 ‘단풍 우물’이 있어 이름이 유래했다. 우리 말로는 ‘싣우물’ 혹은 ‘시드물’이라고도 불렸다. 싣나무는 단풍나무 한 종류를 부르는 순 우리말이다. 물가에 있는 단풍나무로 생각하면 된다. 잎이 길쭉하고 달달한 고로쇠 물이 나와 고로쇠 조청을 만들 수 있는 나무라고 한다. 위장병에도 이 물이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어릴 때 기억이 동네 우물 맛이 다른 동네보다 좋았다.

풍정사계 양조장이 자리한 청주시 풍정마을. 이한상 대표 집안 집성촌이 있는 마을이다. /풍정사계 제공

이곳 땅은 본래 퇴적층이라 땅을 파보면 사질토, 자갈, 이암층이 켜켜히 차례로 나타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필터링이 된 좋은 물이 나왔다고 한다. 초정약수와 15리 떨어져 있어 이곳도 예부터 물맛 좋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내가 자란 마을 이름인 풍정과 내가 만든 네 가지 술(약주, 과하주, 막걸리, 증류소주)을 섞어 술 이름을 풍정사계로 지었다.”

-여름술인 과하주에는 증류주가 얼마 들어가나?

“얼마 넣지 못한다. 소주를 많이 넣으면 기타 주류로 취급돼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 과하주를 만들 때 첨가하는 알콜도수가 20도를 넘지 못하도록 돼 있다. 그래서 최대한 만들 수 있는 과하주 알콜도수가 18도였다. 그래서 지금 과하주는 18%이다. 과하주는 약주(춘)의 맛을 갖고 있으면서도 묵직하다. 또 보관성이 약주보다는 좋다.”

풍정사계 술은 밑술을 백설기 떡으로 한다. 밑술은 발효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밑술은 고두밥, 죽, 떡 중 어느 것으로 하느냐에 따라 술의 향과 맛이 달라진다.
쌀을 갈아서 백설기로 쪄서, 그것에 누룩과 물을 넣고 발효를 시킨다. 백설기를 선택한 이유는 맛의 조화다. 고두밥으로 하면 술맛이 강해질 수 있고, 죽으로 하면 너무 부드러워진다. 그래서 모든 맛의 조화를 위해 밥과 죽의 중간인 떡으로 술을 빚기로 한 것이다.

-밑술을 백설기(떡)로 하는 이유는?

“밑술 방법에 따라 술맛이 조금씩 달라진다. 교동법주는 맛이 사탕처럼 단 것은 죽으로 밑술을 했기 때문이다. 밑술을 죽으로 하면 맛이 달고 부드러워진다. 반면에 맛이 강한 술은 대개 고두밥으로 한 술이다. 대신, 부드럽고 섬세한 맛은 덜하다. 그래서 밑술을 떡으로 하면 죽과 고두밥을 밑술로 하는 것의 중간 맛이 나온다. 현재 전통술 업계는 죽으로 밑술을 한 술이 많다. ‘죽 술’은 달고 부드럽지만, 단점이 힘이 좀 없다. 너무 부드럽다 보니까 술로서 받혀주는 힘이 좀 부족하다. 고두밥은 또 술맛이 너무 강해서 중간인 백설기로 밑술을 하게 됐다.”

-풍정사계 술은 장기숙성하는 이유는?

“우리 술은 ‘100일주’라고 해서 술을 완성하는데 적어도 100일 걸린다. 소주는 옛날 술에 숙성 소주가 없었다. 송로주는 예외적으로 항아리에 일년 이상 숙성시켰다가 마셨다는 얘기가 있지만, 대개 숙성을 따로 거치지 않았다.

하지만 소주도 숙성시키면 우선 맛이 부드럽고, 숙성에서 오는 향이 느껴져서 좋다. 그래서 풍정사계 동(증류식 소주)은 일년 이상 항아리 숙성을 시킨다. 더 나아가 5년, 10년 숙성시킨 술도 나올 수 있다. 나머지, 춘, 하, 추는 모두 100일주라서 발효 포함해서 100일 이상 숙성시켜 만든다.”

풍정사계 네 가지 술 중 가장 호평을 받은 술은 봄술인 풍정사계 춘이다. 이 술은 세상에 나온지 일년만인 2016년에 우리술품평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데 이어 2017년에는 대상을, 그리고 그해 11월 미국 트럼프 대통령 방한 기념 청와대 만찬주로도 선정됐다.

풍정사계 춘(약주)은 2017년 11월 트럼프 대통형 방한 때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됐다. /풍정사계 제공

-트럼프 대통령 방한 만찬주 선정 의의는?

“이틀 전에도 지역백화점 요청으로 시음행사를 가졌지만,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되고 나서부터는 우리 술을 찾는 분들이 많아졌다. 풍정사계가 이름을 알리기 전 그간 충청북도에서는 내세울 만한 술이 없었다. 특히 청주에서는 그랬다. 그래서 관에서도 ‘우리 지역에도 내세울 만한 술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반응이 많았다.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된 것도 주위 분들이 많이 도와줬기 때문이다. 많이들 추천해주셨다. 우리술품평회 행사에서 약주(춘)와 소주(동)가 최고상을 받아 농식품부에서도 우리 술을 추천해준 것 같다.

당시 만찬에 독도 새우로 만든 음식이 나왔는데, 전통 누룩으로 빚은 발효주가 곁들여 나온 것이 큰 의미가 있다 생각한다. 사실, 전통주를 표방하는 술 중에서도 일본식 누룩인 입국을 사용하는 경우들이 정말 많다. 전통 누룩을 쓰는 술 자체가 드문 게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 누룩으로 만든 술을 작년 청와대 만찬에 내세워 우리 술의 자존심을 지켰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청와대 만찬주로 부각되고 나니 신세계백화점, 신라호텔 라연, 그리고 화요에서 하는 가온 같은 큰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그 전에는 서울의 전통주 전문주점 정도에 우리 제품이 납품됐는데, 청와대가 한번 선정하고 나니 유명 백화점, 호텔 한식당 같은데서도 우리 술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잎으로 더 만들고 싶은 술은?

“풍정사계는 사케로 치면 생주(살균처리하지 않은 술)다. 필터링도 거의 하지 않은 술이다. 이런 술은 백화점에서 20만원 넘게 받는 사케와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그 정도 인정을 못받아 그런 값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풍정사계 네가지 술은 하이 레벨(프리미엄)의 술인 것은 사실이다. 가격이 싼 술은 절대 아니다. 그래서 다소 대중적인 가격대의 술을 개발해 봤으면 하는 생각도 있다. 그게 허락(여건)이 될지는 모르겠다. 아직도 풍정사계에 더 집중해야 할 때가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든다. 아직 술이 계속 좋아지고 있다. 평생 배워야 한다.”

풍정사계 이한상 대표 부부. 직원 따로 없이 두 사람이 술을 만들고 있다. /박순욱 기자

-전통주 업계 종사자로서 하고 싶은 말은?

“술 맛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누룩이다. 그런데 정부 차원에서 누룩을 개발하거나 누룩 배양을 가르치는 경우가 흔치 않은 것은 아쉽다. 그러다 보니 누룩술을 제대로 만드는 사람도 드물다. 내 누룩이 있어야 내 술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 개발한 개량 누룩인 입국을 쓰면서 전통술이란 이름을 그대로 쓰는 지금의 전통술 업계 현실은 안타깝다. 지금 모든 막걸리들이 입국을 쓰고 있고 무형문화재 술조차도 입국을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알고 있다.

증류주도 문제다. 감압증류기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이 1992년도라고 한다. 감압증류기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 전통 증류식 소주 제조방식이 아닌 것은 확실하지 않나? 그런데 무형문화재, 명인 지정까지 받은 증류주들도 버젓이 감압증류 방식을 택하고 있는 상황은 이해하기 어렵다.

남들 안하는 누룩 술을 만들고 그것도 상압증류방식으로 술을 만들다 보니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도 증류기를 새로 도입해야 하는데, 상압으로 할건지 감압으로 할건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감압을 택하면 증류도 빨리 돼서 훨씬 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돈을 벌어서 무얼 하겠느냐는 생각이 더 크다.

처음에 남들 안 하는 누룩 술을 하겠다고 한 것은, 누룩 술로 한국에서 최고가 되면 세계에서도 최고가 되는 것이다. 반면에 내가 한국에서 와인을 만들었다고 치자. 사실, 와인이 누룩 술보다 만들기 쉽다. 하지만 한국와인으로 한국에서 1등을 한다고 세계 시장에서도 그만한 평가를 받겠는가? 어차피 와인시장에서 한국은 변방 중의 변방인데, 거기서 1등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이런 생각이었다. 누룩 술은 큰 돈은 못벌더라도 명예는 지킬 수 있지 않겠나 싶었다. 요즘 다들 감압 감압 노래를 부르는데, 덜컥 나까지 감압을 선택하면 정말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처음 했던 생각을 고수하려고 한다.”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18/201805180101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