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뿔 한우의 아버지들은 울음소리부터 달랐다…‘씨수소’

투뿔(1++) 등급의 최고급 한우는 철저하게 과학과 경제성에 따라 생산되고 있었다. 우연이나 자연의 섭리 따위가 끼어들 틈은 없어 보였다.

한우 품질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축산 전문가들은 “세계 최고라는 일본 와규(和牛)의 90% 수준까지 왔다”고 말한다. ‘한우 보증씨수소’는 한우 품질 향상의 일등공신이다. 전국 한우 330만 마리의 ‘아빠’가 될 자격을 국가가 공인한 수소다. 전국 축산 농가들은 이들 씨수소에서 채취한 정액을 가져다 인공수정으로 한우를 생산한다.

국립축산과학원은 지난해 12월 한우 보증씨수소 20마리를 새로 뽑았다. 매년 6월과 12월 두 차례 선발한다. 5년 6개월간 3차례에 걸친 정밀한 시험을 통과해야만 엘리트 한우가 된다. 이들 20마리를 포함해 보증씨수소 100여 두가 충남 서산 ‘농협경제지주 한우개량사업소’에 모여 있다. 한우 품질 개선을 위한 농림축산식품부 정책 사업으로 씨수소를 선발·관리하고 정액을 공급한다.

‘아무튼, 주말’이 구제역 등 가축 질병을 피해 민가에서 떨어진 해발 190m 야산 꼭대기에 있는 이 ‘국가 대표 한우 태릉선수촌’에 들어갔다. 방역 절차가 반도체 공장 뺨치게 엄격했다. 김명국 소장은 “우리가 뚫리면 전국 한우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에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마리당 가치 2800억원 귀하신 몸

“어우웅~.” 한우개량사업소에 들어서자 묵직한 울음소리가 낮게 깔려 밀려왔다. 평소 듣던 일반 한우의 “음메~”와는 차원이 다른, 괴물의 포효 같았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씨수소는 거대했다. 끌고 온 사업소 남자 직원이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덩치만 큰 게 아니라 살집도 두둑했다. 직원은 “마리당 체중이 1t 이상”이라고 했다.

오전 10시, 씨수소 25마리가 정액 채취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한우개량사업소 이승구 과장이 ‘정액 제조 과정’을 설명했다. “보증씨수소 75두를 3조로 나눠 25두씩 3일 간격으로 정액을 채취합니다. 오전 8시 1차 채취 후 한 시간 정도 쉰 다음 2차 채취를 합니다. 2차례에 걸쳐 뽑는 이유는 1차 채취에서 소 생식선에 들어 있는 이물질을 배출시켜 최상의 정액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정액 채취에 사랑은 없었다. 씨수소에게는 오직 흥분만 필요했다. 여기서 ‘의빈우(擬牝牛)’와 ‘의빈대(擬牝臺)’가 등장한다. 의빈이란 ‘가짜 암소’란 뜻이다. 의빈우는 암소 대역 수소, 의빈대는 나무·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암소 대역 틀이다.

“소는 상대방이 암소인지 수소인지, 심지어 가짜 모형인지 구분하지 못합니다. 무엇이건 승가(乘駕·짝짓기를 위해 수컷이 암컷 등에 올라타는 행동)만 하면 흥분해요. 그래서 의빈우나 의빈대에 승가시켜서 정액을 채취합니다. 인간은 물리적 마찰에 의해 사정하지만, 소는 온도에 의해 사정합니다. 이게 암소 생식기 모형인데요, 이 안에 섭씨 42도 온수를 채웁니다. 씨수소가 승가해 발기한 순간 인공 질에 페니스를 삽입시켜 정액을 채취합니다.”

씨수소 정액 채취에 사용하는 암소 생식기 모형./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씨수소 정액 채취에 사용하는 암소 생식기 모형./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의빈우는 보증씨수소 후보였지만 최종 선발에서 탈락한 건장한 수소다. 의빈우를 쓰는 건 씨수소의 우람한 덩치 때문이다. “보통 1t이 넘다 보니 암소는 못 버텨요. 의빈우는 씨수소가 올라타도 날뛰지 않을 만큼 온순해야 하고, 육중한 체격을 버틸 내구성도 있어야 해요. 옆으로 넙적하고 키가 낮은 체형에 다리가 튼튼해야 이상적입니다. 의빈우 선발하기가 씨수소보다 어려워요. 씨수소 예비 후보 30마리 중에서 1마리 뽑기도 힘듭니다.”

의빈우가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지 설명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었다. 이 과장은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서 의빈우들도 보름에 한 번씩 사정하게 해준다”고 했다.

씨수소가 한 번 사정할 때 배출되는 정액 양은 5cc 정도. 그 속에는 정자 15억 마리가 들어 있다. 소는 정자 1800만 마리만으로도 임신하기에 충분하다. 한우개량사업소에서는 채취한 씨수소 정액을 1800만 마리로 나눠 가느다란 스트로(straw·빨대)에 담는다. 보통 350여 개 스트로가 생산된다. 확보한 정액은 냉동 보관하다 전국 축산 농가가 요청하면 수시로 판매한다. 스트로 가격은 정액 품질에 따라 개당 3000~1만원. 김 소장은 “씨수소 한 마리에서 송아지 약 7만 마리가 생산된다”며 “송아지가 400만원쯤이니, 씨수소의 가치는 마리당 2800억원으로 추산할 수 있다”고 했다.

◇고품질 정자 생산 위한 특급 대접

씨수소는 특급 대우를 받는다. ‘노동’은 사흘에 한 번씩 정액 짜내기가 전부. 그 외에는 오로지 휴식하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한다. 씨수소의 하루는 오전 6시 아침 식사로 시작한다. 저녁은 오후 4시. 배합 사료를 하루 두 번 총 3kg가량 먹는다. 이 과장은 “일반 축산 농가보다 훨씬 적게 주는 것”이라고 했다. “살을 찌우려고 보통 마리당 10kg, 그 이상도 먹이거든요. 씨수소가 살찌면 페니스 길이도 짧아지고 정액 품질도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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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질 정액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사료는 단백질 비율이 높다. 일반 축산 농가에서 마블링을 좋게 하려고 곡물(탄수화물) 사료를 먹이는 것과 정반대다. 씨수소 각각의 체중과 건강을 체크해 사료 양과 혼합 비율을 맞춤 지급한다. 종합 비타민, 아연 등 미네랄도 충분히 보충해준다. 지방 없이 건강하고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유지하는 게 정액 생산에 유리하다는 소리다.

한우 보증씨수소는 넓은 축사를 여유롭게 홀로 쓰며 정액 채취를 위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한다./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한우 보증씨수소는 넓은 축사를 여유롭게 홀로 쓰며 정액 채취를 위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한다./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나머지 시간에는 독방에 앉아 되새김질하거나 옆 축사 씨수소와 놀면서 쉰다. 씨수소마다 10평 넓이 축사가 하나씩 배정된다. 일반 한우 농가에서는 4마리가 같은 크기 축사를 나눠 쓴다. 흔히 예상하는 불쾌한 축사 냄새는 조금도 나지 않았다. 털에서 윤기가 흘렀고, 분변이나 이물질이 몸에 묻어 있지 않았다. 바닥에 깔린 톱밥이 보송보송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자주 갈아주고, 아침마다 온몸을 물로 씻고 솔로 빗겨준다. “오염물질이 섞여 있으면 전국 한우 농가로 어떻게 퍼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깨끗한 상태를 유지합니다. 의빈우도 정액 채취 작업을 시작하기 전 엉덩이를 씻기는 등 ‘몸단장’을 하죠(웃음).”

바깥 풀밭에 풀어놓지는 않는다. “방목하면 통제가 안 돼요. 암소들은 모여 다니는 습성이 있지만 수소들은 뿔뿔이 흩어집니다. 말을 안 듣죠. 밟고 다니는 흙이나 풀에서 바이러스가 옮아올 수도 있고요.”

◇은퇴하면 바로 도축… 최하 등급 몰락

씨수소가 정액 생산에 종사하는 기간은 대략 3년. 안락한 노후는 없다. 은퇴와 동시에 도축장으로 보낸다. “보증씨수소가 일반 농가에 유통될 경우 자연 교배에 이용될 가능성이 큽니다. 여러 암소와 교미하게 되면, 전염병이 창궐할 수도 있어요. 이런 위험을 원천 봉쇄하려고 은퇴와 동시에 도축하는 겁니다.”

아무리 우수한 씨수소라도 마리당 10만 스트로의 정액만 공급하도록 제한하는 건 근친 교배를 억제하기 위해서다. 국립축산과학원 박미나 연구관은 “우수한 소만 번식한다는 원칙을 지키면 근친도가 높아지고, 유전적 다양성이 무너져 멸종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 일본 와규는 2015년 근친계수가 8%에 달했다. 근친계수가 6.25%를 넘으면 사촌 이내 가까운 사이로 간주한다. 한우는 아직 근친계수가 1.46%로 낮은 편이다.

한우 품질은 씨수소를 통한 한우 개량 사업으로 크게 향상됐다. 1등급 출현율(한우 1마리를 도축했을 때 1등급 이상 고기 비율)이 20년 전에는 49%였지만, 2005년 70.3%로 뛰었고 2022년 90.8%로 올라섰다. 도축 후 고기 무게도 2007년까지 396kg이었지만 2019년 446kg으로 늘었다.

체중 1t이 넘는 씨수소 옆에 서면 남자 어른도 아이처럼 보인다./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체중 1t이 넘는 씨수소 옆에 서면 남자 어른도 아이처럼 보인다./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앞으로 한우 개량의 방향은 뭘까. 박 연구관은 “개량 기준은 마블링과 저탄소”라고 했다. “사료 효율을 지난해 처음 검정했어요. 조금 먹고 동일하게 크는지 본 거죠. 저탄소를 위한 농식품부 방향은 사육 기간 단축입니다. 한우는 28개월이면 거의 성장이 끝나요. 하지만 마블링을 좋게 하려고 축산 농가들이 2~3달 더 키워서 평균 30.8개월에 출하하고 있습니다. 이걸 단축하는 게 목표지만, 마블링이 좋아야 돈이 되니까 농가들이 쉽게 따라오진 않을 거예요.”

축산업은 온실가스 대량 배출 업종으로 지목돼 왔다. 특히 소는 다른 가축보다 배출량이 많다. 온실효과에 미치는 악영향이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큰 메탄을 대량 발생시킨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처음으로 저탄소 축산물 인증제를 실시하면서 한우 농가 27곳에 인증서를 수여했다. 저탄소 축산 기술을 적용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평균보다 10% 이상 줄인 경우 인증해주는 제도다.

씨수소는 도축되는 순간 최하 등급으로 추락한다. “거세도 안 했지, 마블링도 없지, 나이도 많으니 등급이 안 좋을 수밖에요. 3등급이나 나오려나? 공판장에서 도매업자들이 싸게 낙찰받아 단체 급식이나 육가공 공장에 팝니다. 일반 소비자에게 거의 안 가는 건 맛이 없어 팔리질 않아서예요. 살아서는 2800억원의 가치라지만 죽으면 아무것도 아닌 거죠.” 인생무상, 아니 우생무상(牛生無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