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직거래 장터 ‘그로우마켓’

충남 예산에서 더덕 농사를 짓는 청년 농부 강수일(34)·김예슬(32) 부부는 몇 년 전만 해도 화려한 ‘도시인’이었다. 예산서 태어나 동네 오빠 동생으로 알고 지내긴 했지만 자라면서 헤어져 어느덧 수일씨는 삼성전자 개발자로, 예슬씨는 승무원으로 각자의 길을 걸었다. 남들은 ‘최고의 직장’이라며 부러워했지만 숨 가쁜 일상에 지쳐갔다. 어느 날 모임에서 다시 만난 둘은 지난 2018년 3월 같은 날 퇴사한 뒤 2달 뒤 결혼했다. 이후 2년간 세계 25국을 여행하면서 내린 결론. ‘고향으로 가자!’ 예산에서 더덕 농사를 짓는 예슬씨 아버지의 대를 잇기로 결심한 것이다.

1일 서울 한남동‘엘초코 데 떼레노’에서 열린‘그로우마켓’. 전국 각지에서 온 농부들이 친환경 농산물을 들고 소비자를 만났다. ‘친환경’을 표방하는 만큼 소비자들은 장바구니를 챙겨와야 한다. /최보윤 기자
1일 서울 한남동‘엘초코 데 떼레노’에서 열린‘그로우마켓’. 전국 각지에서 온 농부들이 친환경 농산물을 들고 소비자를 만났다. ‘친환경’을 표방하는 만큼 소비자들은 장바구니를 챙겨와야 한다. /최보윤 기자

지난 1일 서울 한남동에서 열린 농산물 직거래 장터 ‘그로우마켓’에서 만난 이 부부가 선보인 건 당도 높은 1년근 아삭더덕. 가야산 밑자락 삽다리더덕농장에서 키웠다. “더덕도 새싹인삼처럼 쌈 채소든 샐러드든 쉽게 먹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 내놓게 됐어요. 초보 농부지만, 수십년 쌓인 아버지 기술력에 저희의 신선한 아이디어를 접목하면 ‘물건’이 나올 듯싶었죠.” 보통 더덕은 2~3년이나 6년근이어서 주름이 많고 다소 쓴 편이지만 ‘아삭더덕’은 연하면서도 단맛이 강해 사각사각 씹힌다. “더덕에 이런 맛이 있었냐”면서 젊은 고객들이 더 많다더니 개점 시간인 오전 11시부터 ‘오픈 런’(문 열기 전부터 기다리는 것)을 연출했다. 1시간도 안 돼 대략 50인분이 ‘완판’.

‘그로우마켓’은 지난해 6월 친환경 유기농 등 지속 가능 농법을 이용하는 농부들의 판로를 개척하고자 처음 열렸다. 이날은 아삭더덕 강수일 부부를 비롯해, 어린 배와 어린 순을 발효한 뒤 식물 영양제로 사용해 엄나무·고추·열매마(땅속이 아닌 줄기에서 열매처럼 열리는 마) 등을 재배하는 친환경 복합농 경기 양평 김호준 농부, 국내 최초로 무농약 인증을 받은 애플망고를 재배하는 경남 함안 이종욱 농부, 토양에서 유기농 딸기를 재배하는 경기 양평 노태환 농부, 제주도 감귤에 효모와 누룩만 넣고 발효시킨 감귤발효식초의 제주·서울 정유리 농부, 톳밥과 버섯 종균, 물로만 버섯을 키우는 친환경 참송이버섯의 경기 화성 강병훈 농부, 경남 하동에서 무농약으로 자색 아스파라거스 등을 키우는 박철경 농부 등 14팀이 참여했다. 오프라인은 2주에 한 번꼴이지만 온라인 마켓도 있다.

마트나 백화점에는 없는 ‘독특한 상품’을 찾는 소비자를 비롯해 음식 관련 인플루언서, 셰프 등도 현장을 찾았다. 농부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는 창구도 됐다. 청정 수제 소시지를 직접 만드는 한남동 사퀴테리(염장·훈연 등 다양한 조리로 만든 육가공품) 맛집 ‘미트로칼’ 윤유경 대표의 경우 현장에 ‘판매자’로 합류했는데, 그로우마켓 농부와 계약해 식당에서 협업 음식을 선보였다. 농부들 입장에선 일반 소비자 외에 또 다른 판로를 개척한 셈이다.

도심에서 만나는 ‘농부 픽(pick)’ 식재료 장터는 지난 2012년부터 열린 ‘마르쉐’가 대표적이다. 서울 대학로를 시작으로 성수·합정 등으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또 서울 ‘얼굴 있는 농부 시장’, 서울 명동성당 앞 ‘우리농 명동 보름장’ 등이 직거래 친환경 제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양평 ‘두물뭍 농부 시장’ 역시 입소문 났다. 생태적 방식으로 농사짓는 남한강과 북한강 유역의 30여 농가가 참여한다. 그로우마켓처럼 ‘비닐봉지·플라스틱 없는 장터’를 표방하고 있다. 그로우마켓을 기획한 이근상 KSI 대표는 “친환경 유기농법을 고집스럽게 지켜간 농부들의 수고로움을 기리기 위해서 모양과 색이 덜 예쁘더라도 건강하고 의미 있는 식재료를 찾아주는 소비자 장터를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최근에는 흑토마토 등 아이템별 장터, 또 동네별 ‘찾아가는 마켓’ 등 다양한 기획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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